청도의 인물

김지대(金之岱 : 1190~1266)고려 후기 청도 출신의 문신이다.청도김씨(淸道金氏) 시조로 시호는 영헌공(英憲公). 고려시대의 관리로 1217년(고종4년) 거란이 강동을 공략할 때 아버지 대신 종군하였다. 그 후 판사재사(判司宰事)로 있을 때 몽고와의 전투에서 첨서추밀원사(簽書樞密院事)로 부임하여 민심을 무마하고 서북 40여 성을 평정(平定)하고, 수태부중서시랑평장사(守太傅中書侍郞平章事)에 이르러 은퇴하였다.
박한주(朴漢柱 : 1459~1504)조선 전기 청도 출신의 문신이다.자는 천지(天支)이고 호는 오졸재(迂拙齋)이며 점필재 김종직 선생의 고제(高第)로 본관은 밀양으로, 풍각면 차산리에서 출생하였다. 김종직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1485년(성종16)에 별시문과에 장원급제하여 정언(正言), 헌납(獻納), 예천현감(醴泉縣監)등을 역임하였다. 연산군의 실정을 극간하고 노사신( 盧思愼), 임사홍(任史洪)의 탄핵을 받았다. 연산군 4년(1498년)왕과 훈구파에게 미움을 받아 무오사화 때 평안도 벽동에 유배되고 연산군 10년(1504년) 갑자사화 때 서울로 압송되어 희생당했다.
김일손(金馹孫 : 1464~1498)조선 전기 청도 출신의 문신이다.탁영 김일손(濯纓 金馹孫)선생은 성종17년(1486년) 식년문과(式年文科)에 갑과(甲科)로 급제(及第)하여 예문관( 藝文館)에 등용된 후 청환직(淸宦職)을 거쳐 이조정랑(吏曹正郞)이 되었다. 연산군4년(1498년) 『성종실록』을 편찬할 때 스승 김종직(金宗直)이 쓴 『조의제문(弔義帝文)』을 사초(史草)에 실은 것이 화근이 되어 참화(慘禍)를 당하였다. 이 사건을 무오사화(戊午士禍)라 한다. 중종 반정 후(연산군(燕山君) 12년, 1506년) 도승지와 이조판사 양관 대제학에 추증되었다.
김대유(金大有 : 1479~1551)조선 전기 청도 출신의 문신이다. 조광조의 문인으로 1507년(중종2년) 정시에 장원급제하여 진사가 되고, 호조정랑 겸 춘추관 기사관, 정언, 칠원현감을 지내고 1519년 기묘사화 때 직을 사임하고 향리에 은거하면서 조식, 박하담, 주세붕, 김응조, 김극일, 신계성 등 제현들과 도의지교를 맺고 삼족대에서 강론하였다.
박하담(朴河淡 : 1479~1560)조선 전기 청도 출신의 학자이다.조선 중종 때 사미시에 급제하여 사산감역, 사재감봉사 등을 역임하고 을묘년 현량에 천거되었으나 불사하고 산동지역에 사창을 창설하여 환곡법을 실시케 하였다. 을묘사화 이후 퇴계 이황이 관직에 나올 것을 청했으나 거절하였고, 그 뒤 정헌대부 이조판서에 증직 되었다. 또한 삼족당 김대유와 같이 도주관 ( 道州館)을 중수 하였다.
박경신(朴慶新 : 1539~1594)조선 전기 청도 출신의 무신이다.조선 중종 34년(1539년) 태어났으며, 호는 삼우정(三友亭)이고 본관은 밀성이다. 32세에 무과초시(武科初試), 다음해 복시에 급제하고 35세에(선조6년, 1573년) 전시에서 장원급제하였다. 임란 때 선조를 호위하여 피난하고, 청도에서 두 아들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왜병을 물리치고 청도를 수비하였다. 임란 후 선무원종공신 1등, 호성원종공신 2등에 책훈(策勳)되었다.
이운룡(李雲龍 : 1562~1610)조선 중기 청도 출신의 무신이다.자는 경명(景明) 호는 동계(東溪) 본관은 재령이다. 1585년(선조18) 무과에 급제한 후 1587년 선전관(宣傳官)에 임명되고 1589년 옥포만호(玉浦萬戶)에 임명되었다. 이후 많은 전공을 세워 경상좌도수군절도사, 우군수군절도사 겸 삼도통제사 등을 역임하고 1604년(선조37) 선무공신(宣武功臣)3등으로 식성군(息城郡)에 책봉되었다. 그 후 내외의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고 광해군2년(1610) 탄핵되어 향리에 돌아와 병조판서( 兵曹判書)로 추증(追贈)되었다.
이호우(李鎬雨 : 1912~1970), 이영도(李永道 : 1916~1976)청도 출신의 남매 시조시인이다.이호우의 창작 활동은 1939년 『동아일보』 투고란에 「낙엽(落葉)」을 발표하면서부터 시작되었으며, 1940년 『문장(文章)』 6·7호 합병호에 시조 「달밤」이 이병기(李秉岐)의 추천을 받음으로써 본격적으로 전개되었다. 작품집으로는 첫 시조집 『이호우시조집(爾豪愚時調集)』이 1955년 영웅출판사(英雄出版社)에서 간행되었다. 이어 누이동생 이영도와 함께 낸 시조집 『비가 오고 바람이 붑니다』 중의 1권인 『휴화산(休火山)』(1968)을 발간하여 화제를 모으기도 하였다. 이영도는 1946년 대구의 문예동인지 『죽순(竹筍)』에 시 「제야(除夜)」를 발표하면서부터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대표작으로 「황혼에 서서」(1958)가 있으며, 시조집으로 『청저집(靑苧集)』(1954)·『석류』(1968)가 있고 수필집으로 『춘근집(春芹集)』(1958)·『비둘기 내리는 뜨락』(1966)·『머나먼 사념(思念)의 길목』(1971) 등이 있다. 남매의 시 정신을 기리기 위해 매년 청도에서 "이호우·이영도시조문학제" 를 개최하여 시조문학상을 시상하고 있으며, 이호우 탄생 100주년에 맞추어 이호우시조전집 『삼불야』를 2012년에 간행하였고 이어 일본어번역집 『개화』를 발간하여 이호우시조의 국제화를 견인하고 있다.
이기윤(李起胤 : 1898~1938)호적명은 이용석(李用石)으로 1898년 풍각면 차산리에서 출생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 3. 30. 경북 달성군 공산면 소재 동화사 지방학림에서 이성근, 김문옥 등 8명과 함께 독립만세운동을 발의하였다. 대구 남문 장날을 기하여 거사하기로 약정하고, 태극기를 제작 준비하여이 날 모인 3,000여명에게 배부하여 주고,태극기를 흔들며 독립만세를 고창하는 활동 중 동지들과 피속되어 징역 10월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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