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

배자예부운략판목(排字禮部韻略板木)

주소경북 청도군 금천면 선암로 455-27
상세내용

◆ 배자예부운략판목(排字禮部韻略板木) ◆

 

지정번호 : 보물 제917호
수    량 : 162매
지 정 일 : 1987. 7. 16 
소 재 지 : 경북 청도군 금천면 선암로 455-27
시    대 : 조선 숙종 5년(1679) 
소 유 자 : 밀양박씨 선암문중(선암서원)


선암서원(仙巖書院) 장판각에 보관되어있는 이 판목은 청도 문화재의 자랑일 뿐 아니라 우리나라 국학상 유일한 각판목(刻板木)이라는 점에서 큰 가치를 지니고 있다. 예부운략(禮部韻略)은 학문을 연구하는 기초사전으로서 송(宋). 원(元)대부터 우리나라에 수입해온 음운고사전류(音韻考辭典類)이다. 고려이래 선비들의 필수자전으로 쓰여왔고 조선시대에 들어와『홍무정운(洪武正韻)』『동국정운(東國正韻)』이 새로 나왔으나 일반인은 여전히 예부운략을 사용하였으며 뒤에 찾기에 간편한『삼운통고(三韻通攷)』가 보급되기까지 애용되었다. 이는 한문 공부의 기초부터 율시(律詩) 작문 등에 없어서는 안되는 것이고 특히 과거 응시자들의 필수서로 과거를 관장하는 주무부서인 예부(禮部)의 명칭을 붙인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예부운략(禮部韻略)은 1300년(충열왕26년)에 발행한 해계서원판(海溪書院版)이다. 그러나 이는 중국에서 간행된 판목으로 추측되고 1524년(중종19년)에 황해도에서 예부운략(禮部韻略)을 간행하였다고 전해오나 지금은 현존하지 않는다.
청도의 예부운략은 원래 1464년(세조10년)에 방촌 황희(黃喜)의 손자 황종형(黃從兄)이 청도군수로 있을 때 김맹(執義 金孟1410∼1483년)의 글씨로 만든 예부운략(禮部韻略)이 청도 적천사(象川寺)에 보관되어 있었으나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졌다. 임란후 제우당 박경전(悌友堂 朴慶傳)과 국헌 박경윤(菊軒 朴慶胤)형제가 충북 영동에서 원판을 구해와 1573년(선조6년)에 복각한 만력판(萬曆板)12매와 1679년(숙종5)에 박동부(朴東傅)에 의해 다시 복각한 강희판(康熙板)150매 합162매로 크기는 세로20.5cm 가로46.2cm 두께1.8cm이다. 이것이 오늘날 선암서원(仙巖書院)에 보관되어 있는 배자예부운략판목(排字禮部韻略板木)이다. 학자들에 따르면 영동에서 구해온 원본은 청도의 황종형(黃從兄)군수 때 만들어진 천순본(天順本) 예부운략의 복각본(復刻本)이라 한다. 따라서 선암서원(仙巖書院)에 현재 소장되어있는 만력본(萬曆本) 예부운략은 청도에서 세조때 간행된 천순본(天順本)의 복각본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적천사(象川寺)에 보관 중이던 천순본(天順本) 예부운략이 우리나라의 최고본 예부운략이었으나 아깝게도 왜란당시 불타 없어지고 복각본이라 할 수 있는 선암서원 소장의 예부운략이 우리나라 유일의 예부운략으로 희귀본에 속하며 현존 판목수는 152매이다. 배자예부운략(排字禮部韻略)은 서(序), 본문(本文), 옥편(玉篇), 발(跋)의 4개 부문으로 구성(構成)되었다. 강희판(康熙板)은 5권 2책으로 간행되어 유포된바 있으며, 이들 판목은 조선조 서지학, 특히 판각연구 및 국어학 연구에 중요한 자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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