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

식성군 이운룡 선무공신교서외 관계문서(息城君 李雲龍 宣武功臣敎書外 關係文書)

주소경북 청도군 이서면 금촌리 374
상세내용

◆ 식성군 이운룡 선무공신교서외 관계문서(息城君 李雲龍 宣武功臣敎書外 關係文書) ◆

 

지정번호 : 보물 제1212호
수    량 : 2점(교지1매, 교서1축) 
지 정 일 : 1994. 10. 17 
소 재 지 : 경북 청도군 이서면 금촌리 374 
소 유 자 : 재령이씨지암종중

이 공신교서(功臣敎書)는 선조37년(萬曆32년 1604년) 10월에 국왕이 임진왜란(壬辰倭亂)때 특히 옥포해전(玉浦海戰)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식성군 이운용(息城君 李雲龍)에게 선무공신(宣武功臣)3등을 내린 상훈교서(賞勳敎書)이다.
이운용(1562∼1610)의 자는 경명(景明), 호는 동계(東溪), 본관은 재령(載寧), 남해현령(南海縣令) 몽상(夢祥)의 아들이다. 선조18년(1585년) 무과에 급제, 선전관(宣傳官)을 거쳐 선조22년(1589년)1월에 옥포만호(玉浦萬戶)로 임명되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패전한 경상우도 수군절도사(水軍節度使) 원균(元均)이 도망하려는 것을 저지하고 전라좌도 수군절도사(水軍節度使) 이순신에게 원병을 청하도록 건의하여 내원(來援)한 수군과 합세하여 옥포해전에서 적함50여척을 격침시켜 임진란 최초의 승전을 거두었다. 선조29년(1596년) 이순신이 천거하여 경상좌도 수군절도사(水軍節度使)에 임명되어 전쟁이 끝날 때까지 경상도의 수군을 주도하였다.
선조 37년(1604년)에 선무공신(宣武功臣)3등에 책록 되고 식성군(息城君)에 봉해졌으며, 선조 38년(1605년) 내직으로는 도총부 부총관(都摠府 副摠管), 포도대장 겸 화기제조(捕盜大將 兼 火器提調), 비변사당상(備邊司堂上)을 지내고, 외직으로는 삼도수군통제사(三道水軍統制使)를 지냈다. 선조40년(1607년) 함경도병마절도사(咸鏡道兵馬節度使)에 임명되어 국가의 중요 군직에서 활동하여 많은 공적을 남겼으며 병조판서(兵曹判書)에 추증 되었다.
교지(敎旨)는 선조29년(1596년) 1월 25일에 국왕(國王)이 이운용(李雲龍)에게 절충장군(折衝將軍) 正3品 경상좌도(慶尙左道) 수군절도사(水軍節度使)에 임명하는 사령장(辭令狀)이다. 교서(敎書)의 내용은 이운용 장군이 임란 때 옥포해전(玉浦海戰)에서 왜군과 대적하여 크게 격파하고 승전한 무공을 찬양하면서 선무공신(宣武功臣) 삼등으로 책훈하고 포상으로 도상(圖像)을 그려 후세에 길이 남기고 1계급의 직위를 올리고, 부모 처자도 1계급 올리되 자식이 없을 경우 생질이나 여서(사위)를 1계급 올려준다 하였다. 그리고 적장(嫡長)이 세습하여 그 녹(祿)을 잃지 않도록 하여 영세에 걸쳐 도울 것임을 천명하고 이외에 반당4인, 노비7명, 구사2명, 전60결, 은5량, 표리단, 내구마(內廐馬)1필 등을 하사해 주었다. 이 선무공신교서(宣武功臣敎書)는 조선조 공신연구 및 임란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며 식성군 이운용의 전기자료로서 귀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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