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마을유래

제목화양읍 합천리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합천리

상세내용

주위에 산지가 없는 곳으로 마을가로 동천이 흐르고 있어 산골 급류에 수해의 피해가 많았던 곳이다. 1리는 구 국도변에 위치하여 동천변을 따라 마을이 형성되어 지리적으로 특색이 없는 마을이다. 사방이 평야로 농촌으로서는 위치가 좋은 것이다. 강당(講堂)마을에 이어진 마을로 신라시대부터 취락이 형성된 곳이다. 2리는 동천 천변을 따라 깊게 남고북저의 형태로 취락된 마을로 변천을 반복한 사연이 있는 마을이다.

상천노(上天老)동(1리)
지방행정 개편시에 상천리라 하였다. 이는 동천을 끼고 있는 윗마을이라고 붙여진 이름으로 이 마을 옆의 강당들에는 한때 300여호의 큰 촌락이 형성되었다 한다. 이 마을의 내력이 미미한 점에 대하여는 참으로 아쉬움이 많았다.
2리는 원래 관기(官基)동이다. 동헌(東軒)이 이 마을에 있었으나 몇 년이나 지속되었는지 알 수가 없다. 저지대에다 청도천과 동천이 합류하는 곳이라 수년이 멀다하고 수해를 입은 고로 부득이 1200년경에 동헌을 동상리로 옮겨갔다.
강당촌(江堂村)이라고 불리었을 대는 300여호의 큰촌락으로 명실공히 군내에서는 제일 큰 마을이었으나 어떤 사유로 폐촌이 되었는지 확실하지 않다. 대조정(大棗亭)으로 지금은 몇 집밖에 안되는 작은 마을이 되었다. 이 것은 큰 대추나무와 북정이라는 정자가 있었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17세기경 대홍수로 동천이 범람하여 마을이 유실이 되자 현재 마을의 위치에 몇 집이 취락하게 되었다. 부근 주민들은 하천촌이라 불렀다. 신라시대에는 이 곳 평지에 자리잡은 천노사(天老寺)란 복국우세(福國佑世)의 사찰이 있었고 또한 강당촌이 대촌(大村)으로, 관기(官基)촌으로 무상한 변천을 거듭하다가 드디어 폐지가 되고 말았다.

천노리(天老里)
동명은 폐지가 된 절이름이 천노사(天老寺)라서 유래된 이름이라는 설이 있다. 통일신라시대에 그 찬란했던 불교문화가 이 마을에도 꽃피어 강당들에 자리잡았던 대사찰(구전으로는 천노사)의 유래도 세월과 더불어 잃어버리고 당시의 석가여래석불미륵만 고독하게 남아있다. 복국우세의 사찰로 선망의 대상이던 화랑들도 도장으로 이용하였으리라 믿어진다. 조각상으로 보아 경주 석굴암 석불과 금천면 박곡리 석불과 동일한 것이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