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마을유래
경상북도 청도군 각남면 신당리
상세내용
남산(南山) 서봉(西峰)의 여러 갈래 중에서 몇 줄기의 지봉들이 깊게 짧게 뻗어 우뚝 우뚝 선 기슭에 자리잡은 마을들이다. 사촌천(沙村川)과 대산천(臺山川)이 합류하는 지점 부근에 신당(新堂)촌, 산등선사이 곡간(谷間)의 가마실(釜谷), 이실(耳谷)이 각각 나름대로 터를 잡아 마을을 형성하고 있으나 앞들에는 선사시대의 지석묘군이 있는데 경지 정리로 그 수가 줄고 있음이 애석하다.
신당(新堂)
1600년 말경에 달성인 서대건 공이 입촌하여 보니 곽당(藿塘)이라는 마을의 옆에 새로(新)이 생긴 마을이라고 붙여진 이름이다. 신당이 성해지자 곽당촌은 차차 쇠퇴하여 폐촌이 되어 지금은 동네터가 밭으로 변해 있다.
가마실(釜谷)
마을 주위의 산세가 가마솥(釜) 형국이라고 붙여진 이름으로 풍수지리상의 동명이다.
이실(耳谷)
마을 양쪽의 산등선 모양의 사람의 귀(耳)를 닮았다 하여 붙여진 동명이라하나 그 전에는 이길(梨吉)이라 했다. 이길(梨吉)을 이곡(耳谷)으로 개명한 것은 이길원(梨吉院)이 있던 곳이라 원명을 그대로 동명으로 하는 것보다 같은 음인 다른 한자로 바꾸어 부른 것이 아닌가 싶다.
2리인 부곡에는 1600년말에 창녕인 성세린 공이 입촌 정착하여 동풍을 유교의 바탕에 두는 등 윤리관 정립에 수범적인 처신을 하였다. 이곡(耳谷)에는 1600년초에 피난 차 이곳에 머물던 의성인 김경원 공이 정착하여 마을을 가다듬고 새로운 터전을 마련하였으므로 오늘의 이곡은 의성 김씨 마을이 되었다 한다.
이길원(梨吉院)지에는 당시를 증명해주는 고목이 남아 있어 여행객들의 인상 깊었던 술맛과 더 불어 짙은 잔영이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