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마을유래

제목매전면 용산리
1.매전면 용산리

 

경상북도 청도군 매전면 용산리(龍山里)

상세내용

효양산의 엄청난 위용과 비룡봉, 중산봉등 여러 산봉에 둘려져 있고 산기슭에 옹기종기 산촌답게 자리잡은 마을이다. 지대가 높아 마을앞 곡야가 눈아래로 계단식이니 경전(耕田)이 층층이 내려다보인다. 마을이 높다는 것을 알리기나 하듯이 마을에 못이 있다. 도로에서 마을로 들어가는 진입로가 용허리를 지나간다. 언제부터 사람이 살았는지는 이 마을 역시 알 수가 없다. 다만 구전으로 전해오는 것은 1580년에 파평인 윤흥극 공이 입촌하여 정착하고 산기슭 비탈진 곳을 일구어 마을 터전을 잡아 나갔다고 한다.

사갈(巳渴), 사가래

윤 공이 동기를 잡고 보니 물이 귀하여 사갈(巳渴)이라 했다는 설이 있으나 이 마을 지형을 살펴보고 용산(龍山)을 동명으로 정한 것과 비교해 보면 이해가 된다. 용산리에서 낮게 뻗어간 구릉이 온막 고개가 되고 다시 더 뻗어 동창천변에서 멈춘 자미산(紫嵋山)을 마을에서 내려다 보면 용맥으로는 너무 약하여 사맥(巳脈-뱀)으로 보고 동창천을 향하여 뻗은 형상이 목마른(渴) 뱀(巳)이 믈을 맛려 내닫는 형국이라 사갈(巳渴) 또는 뱀이 가는 모습이라 사가내가 변하여 사(巳)가래로 부르게 된 것으로 보인다. 또 한 설은 사(沙) 즉 모래 성질이 많은 토질이라 사(沙)자와 가래는 자미산(紫嵋山)을 마을에서 바라보면 흡사 가래 모양이라 모래는 가래로도 일구어 나갈 수 있다는 뜻에서 사가래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그러나 뱀(巳)를 용으로 미화시키고 마을옆 비룡곡에 있는 용소(龍沼)를 용연(龍淵)으로 다시 미화시켜 용연리(龍淵里) 동명이 정해 진 것이라고 믿어진다. 중산리는 둘러싸인 산속의 마을이라서 중산(中山)으로 불렀다는 것이다. 용산리는 용연리와 중산리의 합동이다.

비룡(飛龍)곡

신라 고찰인 불영사(佛靈寺)가 있다. 이 절에 있는 천불탑은 전탑(塡塔)으로 기단 및 탑신에 벽돌 한 장 마다 불상이 새겨져 있어 특이하다.